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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아파트백업

우산썰

장마가 시작됨. 하교시간에 애들 우르르 나가고 강림이도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밖에 비가 내림. 퍼붓는 건 아닌데 맞고 가기엔 많이 내림. 어쩌지 싶어서 하늘 올려다 보며 괜히 비에 손만 적시고 있는데 옆에 인기척이 느껴짐. 고개만 옆으로 돌려보니까 날씨는 구린데 맑게 갠 하늘 같은 얼굴의 하리가 딱 서있는 거.

강림이 속으로 오늘은 해가 여기에 떴구나 하고 멍하니 쳐다보지. 그러다 하리가 갑자기 고개 돌리면서 둘이 눈이 딱 마주치고. 하리가 베실베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개구지게 웃어. 그리고 꼭 저를 닮은 분홍색 3단 우산을 강림이에게 내밀지. 우산 안 가져왔지? 이거 쓰고 가. 그럼 하리 너는? 하는 말이 목끝까지 올라왔는데 강림이 말보다 하리 행동이 더 빨랐음.

비 속으로 뛰어들더니 어느 우산 안으로 쏙 들어가지. 비스듬해 있던 우산이 하리 위로 드리워지고 특유의 동그란 머리가 보이는거야. 좀 짜증스럽게 구겨졌지만 언뜻 하리 얼굴이 보여. 난 두리랑 같이 쓰고 가면 돼. 내일 보자. 남매가 투닥거리며 우산을 쓰고 멀어지지.

강림은 구남매 우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멍하니 서 있다가 부농부농한 우산을 들여다 봄. 기계같은 뻣뻣한 동작으로 우산을 펴지. 가만히 우산을 바라보다 겨우 머리 위로 올려쓰고 빗속으로 나와.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는데 우산 안은 온통 볕내가 가득해. 강림이 미소가 사라지지 않음.

구남매가 같이 쓰기엔 두리 우산은 너무 작았음. 결국 구남매가 나란히 어깨 한 쪽씩 젖었지. 두리 짜증 폭발인 건 당연. 하리가 미안하다고 달래주고 두리는 누나 아침에 우산 챙기지 않았냐고 우산 잃어버렸냐고 하잖아. 하리 두리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우산 없는 사람 있어서 빌려줬어. 이러고 먼저 씻는다며 가버리지.

하리 따뜻한 물에 몸 녹이면서 학교 중앙현관에서 마주친 강림이 생각에 물이 뜨거운건지 제 얼굴이 뜨거운 건지 모르겠어. 씻고 나가면 연락해봐야지 라고 생각함. 근데 하리 폰이 없거든. 전화기 붙들고 계속 고민만 하는거야. 연락을 해볼까 말까. 그래서 했냐고? 못했지. 고민만 하다가 잠이 들고 날이 밝았지.

터덜터덜 학교 갔는데 강림이랑 만났어. 강림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하리야 안녕/ 이러는데 하리도 수줍게 안녕이라고 답하지. 혀누두리 옆에서 휘파람 불고 장난 계속 치는데 익숙한건지 관심 밖인지 강림이 눈에는 안 보이봄. 같이 들어 가자 이러고 둘이 가버리고 현우가 어어어?? 나도오!! 현우는 심지어 하리랑 같은 반이잖아. 옆반인 강림이가 같이 가자고 데리고 가버림. 혀누 벙찌고 후다닥 두 사람 뒤따라 가지.

장마긴 장마인가봐. 2교시가 끝나가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해. 덕분에 체육도 실내수업으로 바꼈지. 비는 잦아들었다 퍼붓기를 반복하면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내렸지. 하리 우산 꺼내려는데 가방 안에 없어. 그제야 강림이에게 빌려준게 생각난거야. 오늘은 두리도 먼저 집에 갔는데 어쩌지. 어제 강림이랑 같은 상황이 됐네.

애들은 다 우산 들고 가는데 하리는 비맞고 가게 생겼어. 아침에 다른 우산이라도 챙겼어야 했는데 후회해도 이미 늦었지. 혀누랑 같이 가자고 할까 교실로 돌아가려는 순간 부딪힌거야. 눈앞에 번쩍하고 불꽃이 터지고 코가 욱씬하지. 누구야! 하고 소리 지르며 눈을 떴는데 뭔가 뒷목이 서늘해.

삐걱대며 고개를 45도 들어보는데 어....이건 아닌데 싶을거야. 강림이 미소가 보이거든. 서서 꿈 꾸나 싶지. 가가강림아? 불러보니 응. 하는 대답이 돌아옴. 부딪힌 코가 얼얼한데 순간 부딪힌게 강림이라는 자각이 들면서 어어어! 미안해!! 아프진 않아? 호들갑 떨지. 강림이 말짱한 얼굴로 응? 하고 쳐다만보고 하린 머쓱해짐.

실은 아파 디질 거 같은데 내색하면 하리가 부끄럽잖아. 그러다 하리 뒤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게 보일테고 하리 빈 손도 눈에 들어오지. 강림이 웃음기 싹 사라지고. 하리야 우산 없어? 라고 물어보고 하리는 하핳하..어색한 웃음만 흘리고 강림이 묵묵히 가지고 있던 우산 펴고 하리 팔을 잡아당겨. 하리 우산 안으로 끌려 들어가지.

강림이가 우산을 하리 쪽으로 기울이고 내 우산 같이 쓰고 가자라고 해. 하리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다. 분명 사방이 다 트여있는데도 둘만의 공간에 있는 거 같잖아. 너무 의식하는 거 아닌가. 구하리 진정해라 마인드 컨트롤 하는데 강림이가 하리 어깨를 감싸서 제쪽으로 당기잖아. 하리 깜짝놀라는데 강림이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 젖어. 딱 한마디만 하고는 그냥 걷기만 하지.

하리 모든 신경이 강림이 손이 닿은 어깨로 향하고. 알고보니 하리 강림이 너무 의식한 탓에 우산 바깥으로 스멀스멀 움직인 거. 강림이랑 멀어지니까 비 맞잖아. 그래서 강림이가 하리 비맞지 말라고 당긴거야. 하리 무슨 생각으로 집까지 갔는지 모르겠어. 나란히 앞만 보고 있어서 몰랐는데 고맙다고 인사하려고 보니 강림이 반대쪽 어깨가 다 젖어있지. 아니 그냥 딱 최강림이 절반만 젖었어. 그에 비해 자신은 멀쩡하거든.

강림이 말갛게 웃으면서 그럼 내일 보자 하고 가버리고 혼자 남은 하리는 기분이 막 몽글몽글 간질거리고 몸이 공중에 둥두실 떠오르는 기분. 웃음이 히죽히죽 새어나오고 입꼬리가 가만 있지를 못해. 강림이만 생각하면 명치부근이 따끔거리고 손발을 가만두지를 못하겠어. 으아아아아!! 소리 지르다 두리에게 핀잔 받고. 설렘 두근거림 가득한 밤을 보내겠지.

꿈에 강림이 나오면 좋겠다. 둘이 우산 같이 쓰고 빗속을 걷는 우산 데이트 하겠지. 하리 자면서 히죽히죽 웃고 그 아래 두리는 가위 눌리고. 어어ㅓ어 누누누나 자자모태써어....으어어ㅓㅓ어어ㅓ억

강림이 가방 열어보고 멈칫함. 하리 부농부농한 우산이 들어 있거든. 사실 그날 가지고 가서 우산 주면 되는데 이상하게 그러기 싫었던거지. 저도 모르게 우산을 주기보단 제 우산을 같이 쓰고 싶어져서 하리 잡아 당긴거야. 강림이 내가 왜 그랬지 싶지. 괜히 머리 긁쩍대다가 가방 닫아버릴 듯. 그리고 비는 또 옵니다.

/강림아/ 어? /우산 없어?/ 그럼 내 우산 같이 쓰자./ 어? / 하리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슬로우모션처럼 움직이지. 환하게 웃었다가 똘망하게 말했다가 다시 놀랐다가 당황하는게 아주 오래된 필름영사기에서 흘러나오는 장면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거야. 아 여기에 있다. 오늘은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게(웃음

강림이 홀린 듯이 응이라고 대답하고 하리 우산 씀. 그 가방에 하리 우산 들어있는데 말이야. 우산 씌워줬으니까 드는 건 내가 할게 하리 손에서 우산 가져가는데 하리 손등 위로 겹치면서 미끄러지듯 손잡이를 잡음. 하리 또 피가 끓는 느낌. 하하...덥네. 장마이긴 한가보다 되게 습하다 하하. 우산 속은 또 둘만의 공간이 되고 강림인 끝내 우산을 돌려주지 못함.

계속 가방에 넣고 다니긴 한데 못 돌려주다가 돌려주려고 마음 먹은 날, 예고없이 내린 비에 빌려준 하리 우산은 또 두 사람의 공간이 되고 다시 강림이 손에. 하리 분홍우산은 결국 제 주인에게 가지 못하고 비가 올 때마다 하리강림하리강림을 빙글빙글 돌겠지. 사랑의 분홍 토끼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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